대구 3·1운동길의 여성 독립운동가 임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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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 속 3·1운동길의 역사적 현장

대구 도심 한가운데에는 1919년 3·1운동의 뜨거운 함성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곳이 있습니다. 청라언덕에서 90계단으로 이어지는 '대구 3·1운동길'은 당시 학생과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준비하며 이동하던 비밀 통로였습니다.

3·1운동길 초입의 역사적 공간

3·1운동길 초입에는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성서학당 학생들이 집결해 만세운동 장소로 향하던 터널 형태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활짝 펼쳐진 꽃 화단을 지나면 독립만세 장면을 형상화한 벽화가 나타나며, 바로 옆 기념 벽에는 대구를 대표하는 독립유공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대구 여성 독립운동가 임봉선 지사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대구 여성 독립운동가 임봉선 지사입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의 외침은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장날에도 크게 번졌습니다. 특히 대구의 3·8 만세운동은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던 것으로 기록됩니다.

임봉선 지사의 독립운동 활동

당시 23세였던 신명여학교 교사 임봉선 지사는 서울과 평양에서 활약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3월 8일 오후 3시, 신명학교 학생 50여 명을 이끌고 서문시장 큰 장터에 도착해 태극기를 힘껏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위 대열은 1,000여 명까지 늘어났고 대구 전역이 만세의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옥고와 희생

임봉선 지사는 그날 현장에서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혹독한 옥고의 후유증으로 1923년, 고작 스물여섯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명확한 공적을 남기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대구 여성 독립운동가의 재조명

오랫동안 대구 시민들이 찾는 주요 기념공간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구여성가족재단의 ‘반지 길 투어’ 등을 통해 대구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되면서 임봉선 지사의 이름이 당당히 기록되고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대구의 독립운동 역사와 임봉선 지사의 의미

대구는 일제강점기 당시 형무소와 순국 독립운동가 수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도시입니다. 그 중심에는 유독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구 3·8 만세운동의 불꽃을 지핀 사람,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며 학생들을 이끌었던 사람, 짧은 생을 독립에 바쳤던 사람이 바로 임봉선 지사입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

우리가 오늘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유는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이들의 용기 덕분입니다. 대구의 잔다르크라 불릴 만큼 위대한 용기를 보여준 임봉선 지사의 이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현장 안내

청라언덕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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