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성산 이영식의 삶과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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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성산 이영식의 삶과 업적

독립운동가 성산 이영식의 삶과 업적

2025년 8월,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특수교육과 장애인 복지의 선구자인 성산 이영식 선생님의 삶과 업적을 되새겨본다.

이영식 선생은 1897년 12월 13일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이천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계성학교에 근로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3·8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혜성단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대구 시내 상인들에게 폐점 철시를 요구하고, 대구경찰서장 및 친일 인사들에게 암살 협박문을 발송하는 등 강력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3년 일본 고베신학교에 입학해 유학 생활 중에도 재일교포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다가 일시 구금되기도 했다. 졸업 후 대구서문교회 목사로 취임하고, 대구 애락원 나환자교회와 함경북도 성진 중앙교회, 만주 간도성 명월구 제일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이어가며 교인과 교민들에게 독립사상과 민족의식을 교육하고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조국 독립에 헌신했다.

광복 이후에는 대구 애생원과 나환자 교회를 설립하고, 한국 최초의 사립 특수교육기관인 대구맹아학원을 세워 장애인 교육과 복지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경상북도사회사업연합회 회장, 한국맹농아교육기관 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1956년에는 특수교육 분야 지도자 양성을 위한 한국이공학원을 설립했다. 1961년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학교)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고, 1962년 농아교육 전문학교 대구영화학교 교사 신축에도 힘썼다.

그는 문화훈장 국민장(교육부문), 문교부장관 표창장, 대통령 표창장(독립유공자상), 건국 25주년 국민훈장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1967년에는 지체장애아를 위한 대구보건학교를 설립했고, 1973년 광복회 경상북도 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 사이판 티니안섬 밀림에서 희생된 한국인 매몰 현장을 발견해 5천여 구의 유해를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봉환하는 데 기여했다. 1980년에는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 추진 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마지막까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1981년 12월 8일 별세한 성산 이영식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특수교육과 장애인 복지의 선구자로서 우리 모두가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할 인물이다.

이름: 이영식
본관: 성산(星山)
호: 성산(惺山), 청산유수(靑山流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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