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성모당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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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성모당 순례길

대구 남산동에서 만나는 가을 성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2에 자리한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성모당은 대구 중구 근대골목투어 5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성지순례 명소다. 남산동 인쇄골목과 관덕정, 남산 100년 향수길이 걸어서 이어져 있어 성모당뿐 아니라 오래된 남산동의 역사와 골목 풍경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성모당은 중구 베스트 경관 100선에 선정된 장소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과 이국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가을에는 나뭇잎이 여러 빛깔로 물든 숲길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경내로 접어들면 기도와 순례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조용히 머물고 있어 도심의 일반적인 관광지와는 다른 경건함이 전해진다.

남산동의 골목과 근대 건축,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역사를 한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성모당 순례길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옥 쉼터 안익사와 왕벚나무

성모당 경내에서 놓치기 어려운 장소 가운데 하나는 한옥 건물인 안익사다. 안익사 주변에는 100년 된 것으로 알려진 왕벚나무가 자리한다. 봄에는 왕벚꽃으로 주목받고, 가을에는 노랗게 변하는 잎과 한옥의 선이 어우러져 계절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안익사의 연원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안세화 드망즈 주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직자를 위한 병원 두 동을 세워 축복했으며, 한 동은 입원 환자를 위한 병실로 사용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안에 있었다. 다른 한 동은 외래 환자나 휴양 중인 성직자를 위한 시설로, 주교관과 가까운 정원 입구에 자리했다고 전해진다.

이 부속 건물은 프랑스어로 별관 또는 부속 건물을 뜻하는 ‘Annexe’라고 불렸다. 기존 건물이 사라진 뒤 옛 사제들의 휴식처를 기념하려는 뜻을 담아 한옥 건물을 세웠고, 이를 안익사라고 부르게 됐다.

안익사는 1996년까지 선종한 교구 사제들의 빈소로 사용됐다. 2012년부터는 주변 환경을 정비해 방문객이 머물 수 있는 쉼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옥 주변에 내려앉은 단풍과 왕벚나무의 변화는 성모당의 가을 풍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매일 이어지는 미사와 기도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경내에 세워진 성모당은 성모 마리아를 모신 순례지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순례자들이 기도하는 열린 성지이자 치유를 기원하는 장소로 알려져 내국인과 외국인의 발길이 이어진다.

성모당에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전 11시까지 미사가 진행된다고 안내돼 있다. 미사가 열리는 동안 신자들은 두 손을 모으거나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경내를 둘러보는 방문객들도 조용히 이동한다. 남산동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 방문객도 볼 수 있으며, 종교 여부와 관계없이 차분하게 공간을 살펴보는 모습이 이어진다.

성모당 옆에는 봉헌초를 밝힐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초값은 1천 원으로 안내돼 있으며, 방문객들은 줄을 따라 차례로 초를 밝히고 각자의 소망을 담아 기도한다. 가족과 함께 찾은 외국인 방문객들이 참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1918년 완공된 성모 동굴

대구 성모당은 1917년 7월 착공해 1918년 8월 15일 완공됐다. 건립의 계기는 1911년 조선대목구에서 남방 지역을 담당할 대구대목구가 분리·설치된 뒤 초대 감목으로 부임한 안세화 드망즈 주교의 허원이었다.

대구대목구에서는 1913년 12월 4일 대구 본당인 계산 주교좌본당의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등의 협력으로 주교관을 완공했다. 이어 1914년 10월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건립했다.

계산 주교좌성당 보좌 소세 신부가 중병으로 위독해지자 안세화 주교는 소세 신부가 회복하면 주교좌성당 증축에 앞서 성모 동굴을 봉헌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세 신부가 회복한 뒤 1917년 7월 31일 성모 동굴 공사가 시작됐다. 공사는 1918년 8월 15일 마무리됐으며, 같은 해 10월 13일 성모당 축성식이 거행됐다.

성모당은 대구대교구 설립 초기의 역사와 교구 공동체의 서원이 건축물에 함께 담긴 장소다.

루르드 성모 동굴을 본뜬 구조

성모당은 프랑스 피레네산맥 북쪽 기슭 가브강가에 있는 루르드의 성모 동굴을 본떠 조성됐다. 크기뿐 아니라 바위의 형태도 루르드 동굴과 같게 구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모당은 교구청 안에서 높고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하며, 앞에는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다. 건물은 북향으로 배치됐다. 외부는 붉은 벽돌로 구성됐고, 동굴 안쪽은 시멘트로 조성됐다. 내부는 암굴처럼 꾸몄으며 성모당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오른쪽 위에 성모 마리아상이 놓여 있다.

기념 동굴의 형태는 교황 레오 13세가 바티칸 정원에 만든 루르드 성모 기념 동굴을 본뜬 것이다. 돌로 조성한 성모당 건립 비용은 당시 대구교구에서 활동하던 프랑스인 사제와 한국인 사제들의 헌금으로 마련됐다고 전해진다.

성모상은 루르드에서 15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18차례 발현했다고 전해지는 성모의 모습을 표현했다. 머리에는 흰 수건을 쓰고 허리에는 청색 띠를 둘렀으며, 두 손은 합장한 모습이다. 팔에는 묵주가 드리워져 있고 맨발 아래에는 금해당화가 표현돼 있다.

성모당에 새겨진 봉헌의 의미

성모당은 1997년 2월 18일부터 4월 16일까지 보수공사를 거쳐 새롭게 정비됐다. 동굴 위에는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문구에 표시된 1911은 대구대교구가 설립된 해를 뜻한다. 1918은 드망즈 주교가 교구를 위해 하느님께 청한 세 가지 소원이 모두 이뤄진 해를 가리킨다고 설명된다. 라틴어 문구인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서원에서’라는 의미다.

성모당에서 이뤄지는 기도는 세 가지 의미로 설명된다. 성모를 공경하고 감사하기 위한 기도, 영혼이나 육신의 은혜를 청하는 기도,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허원을 이행하기 위한 기도다. 이러한 신앙적 배경은 성모당을 단순한 근대 건축물이 아니라 지금도 기도가 계속되는 순례지로 이해하게 한다.

교구의 역사를 간직한 성직자 묘지

성모당 경내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가 있다. 묘지는 1915년 11월 1일 드망즈 주교의 주례로 축성됐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 성당에서는 샤르즈뵈프 신부의 주례로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묘지에는 타국에서 선교 활동에 생애를 바친 선교사들의 안식처가 보존돼 있다. 입구 양쪽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성령 강림’을 표현한 동판이 있으며,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는 천주교의 의미를 상징한다.

이곳에는 드망즈 주교를 포함한 주교 7명과 몬시뇰 6명, 차부제 2명을 포함한 사제 65명이 안장돼 있다. 남산동 묘지가 가득 차면서 2013년부터는 선종한 사제들을 군위 가톨릭묘원 안의 제2성직자 묘지에 모시고 있다. 남산동 묘역은 이후에도 대구대교구의 영적 뿌리를 보여주는 장소로 남아 있다.

묘지 내부에서는 방문객들이 말소리를 낮추고 천천히 걸으며 묘역을 살펴본다. 성모당의 기도 공간과 성직자 묘지는 대구대교구의 시작과 성장, 선교 활동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남산 100년 향수길과 함께 걷는 코스

성모당 맞은편에는 성 유스티노 신학교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이 자리한다. 남산 100년 향수길을 따라 이동하면 성모당과 안익사, 성직자 묘지, 주변의 종교 건축물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인쇄골목과 관덕정까지 연결하면 대구 중구 근대골목투어 5코스의 역사적 흐름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가을의 성모당은 화려한 단풍만 감상하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오래된 왕벚나무와 한옥 안익사, 붉은 벽돌과 돌로 조성한 성모 동굴, 조용한 성직자 묘지가 한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전한다.

대구 중구 성모당은 남산동의 근대사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발자취, 가을 자연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도심 속 성지순례지다. 경내에서는 미사와 기도가 이어지는 만큼 방문객에게는 정숙하게 공간을 둘러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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