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형무소역사관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 이육사
대구형무소역사관, 독립운동의 현장을 만나다
대구 중구 삼덕동 삼덕교회 2층에 자리한 대구형무소역사관은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알려진 대구형무소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는 공간입니다. 1908년 대구부에 처음 설립된 이 형무소는 1910년 중구 삼덕동으로 이전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곳입니다.
대구형무소에는 총 2,386명의 서훈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으며, 이 중 216명(국가 사훈 212명)이 순국하였습니다. 이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195명보다 많은 수치로, 대구형무소가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독립운동가 이육사와 대구형무소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대표적인 인물로는 경북 안동 출신의 이육사(본명 이원록)가 있습니다. 그는 수인번호 264를 자신의 호 '육사'로 삼아 항일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됩니다. 이육사는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며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 심산 김창숙 선생, 전수용(전해산) 의병장, 안규홍 의병장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습니다. 특히 박상진 선생은 1910년 판사시험 합격 후 대구에 삼태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의 연락본부로 활용하였으며, 혜성단을 조직해 대구 3.1 만세운동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대구형무소역사관의 전시와 의미
대구형무소역사관은 전시존, 영상존, 추모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당시 형무소의 배치 모습을 3D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좁은 독방과 열악한 수감 환경 속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들의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을 주도한 장진홍 선생의 활동과 김영랑 시인이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숨기고 활동하다 체포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영상 자료를 통해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모진 고문과 추위, 배고픔의 고통이 상세히 소개되어 후손들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역사적 가치와 교육의 장
대구형무소는 1908년 7월 설립되어 범법자와 수용자들을 교정·교화하는 목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순국하는 비극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1923년 대구형무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61년 대구 교도소로, 1971년과 2023년에는 각각 신축 이전을 거쳤습니다.
역사관 내에는 당시 형무소 건축에 사용된 벽돌도 전시되어 있어 시대적 의미를 더합니다. 이육사의 호 '육사'는 수인번호 264에서 따온 것으로, 일제의 역사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방문 안내
- 위치: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 22, 삼덕교회 2층
- 관람 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대구형무소역사관은 단순한 역사 전시 공간을 넘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여 우리 역사의 소중함과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권합니다.
